#독서후기 [선한리뷰 2020-022] 카렐 차페크의 “곤충 극장” 로봇이라는 말을 처음 만든 카렐 차페크의 “곤충 극장”은 그의 희곡 모음집으로 총 세 편의 희곡이 실려 있다. 노벨 문학상을 받아 마땅한 작가 카렐 차페크는 기자, 소설가, 극작가, 번역가, 수필가, 삽화가, 철학자, 동화작가, 전기 작가를 지냈다. 그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파시즘과 부조리와 비인간성을 치열하게 투쟁하는 작가로 태어났다. 파시즘이 전 세계를 뒤덮던 1936년.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 후보였던 카렐 차페크에게 정치색을 없애고 두리뭉실한 책 한 권만 써내면 그 책으로 노벨 문학상을 주겠다는 제의를 여러 번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는 명예보다 진짜 작가를 택했다. 그는 작가이기 이전에 그가 작품화한 객체화 대상의 미약한 인간이었다. 그가 이렇게 다양한 글쟁이의 모습으로 변신하며 글을 썼던 이유는, 어떤 모습으로든 죽음과 고통의 부조리한 세상을 어떻게든 인간 그 자체로 지켜낼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기발한 작품 “도롱뇽과의 전쟁”으로 만났다. 이번 책은 “도롱뇽과의 전쟁”을 읽을 때의 충격은 없었지만 풍자를 통해 그가 세상을 향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곤충 극장>욕망과 나르시시즘에 빠진 나비, 똥의 크기가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쇠똥구리.자식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삶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맵시벌,조직사회 속에서 일상의 정체성은 무참히 파괴되어가는 일개미들.큰 의미를 부여하고 힘들게 태어나지만, 그에게 주어진 삶은 하루뿐. 이 모든 곤충들의 삶은 모두 인간,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와 닮아 있다.인간 여행자가 곤충 세계에 들어가 바라보는 천재작가 카렐 차페크의 희곡집 “곤충 극장”은 그렇게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곤충의 삶을 통해 인간 사회를 풍자한다. 결국 다 먹자고 하는 일이라는 것. 기생충 : 그게 바로 내 말이야. 죄다 고기 한 덩어리 얻자고 하는 짓이라니까. 다른 딱한 새끼가 배를 곯더라도 말이야! 죄다 자기 배를 불려야 하는 거지, 안 그래? (64쪽) <마크로풀로스의 비밀>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끝이 없는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100년도 넘게 끌고 있는 한 소송 사건을 통해, 우리는 사랑의 절대순수와 욕망의 절대부조리를 만난다.당신이 300년 살 수 있는 비법책을 발견했다면, 아니 그 비법을 타인이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까. 공동선인가, 나만의 선인가.물론 공동선이 될 수도 없겠지만. 화려한 여주인공이었던 아멜리아는 결국 자신이 숨겨왔던 비밀이 발각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긴다. 그러나 그녀의 것을 빼앗으려는 사람들은 법의 이름으로, 정의의 이름으로 그녀의 비밀을 캐왔던 사람들이었다. 과연 세상에 정의는 존재하는 걸까. 그들을 향해 외치는 아멜리아의 절규가 더 내 가슴을 친다. 아멜리아 : 사람들은 절대 나아지지 않아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총격, 지진, 세상의 종말 ? 아무것도 아니야! (223쪽) <하얀 역병>코로나 바이러스의 공격에 당황한 인간들의 필사적인 노력이 하루하루 지구촌을 하나로 묶는 이때, 카렐 차페크가 오래 전에 발표한 전염병 관련 희곡집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가 오래 전에 집필한 많은 내용 중에 지금 우리의 상황과 너무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전염병은 타인과의 접촉을 멀리 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하지만 가까이할 수 없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가족이 죽어도 장례조차 제대로 치를 수 없다. 이미 서구 유럽은 생필품 사재기가 극에 달해 있다. 인류의 재앙 앞에 한 개인인 인간은 자신과 타인 중 누구를 더 생각할까. 아버지 : 지금은 턱도 없이 부풀려져 있어요. 재채기 한 번만 하면 하얀 역병이라고들 하잖아. 한두 사례가 나오니까 신문들이 다 미쳐 돌아가고 있다니까!어머니 : 언니가 그러는데, 벌써 우리나라에도 굉장히 많이 퍼져 있다던데요.아버지 : 말도 안 되는 소리. 여보, 그냥 괴담에 불과하다니까! 이것 봐요. 여기 시겔리우스가 중국에서 온 병이라고 하잖아요. 대체 우리가 왜 이런 후진국을 지원해 줘야 하는 거지? 그런 나라는 유럽의 식민지로 만들어 버려야지, 암. 시겔리우스 말로는 감염이 된다는군. 환자들은다 수용소에 보내버리고 우리한테 옮기지 못하게 해야지! 간단한 일이라고! 하얀 얼룩이 생기면 곧장 보내버리는 거야. 저 위층 마녀가 죽을 때까지 저기 살도록 내버려 두는 건 망신이라니까. 악취가 들끓는 집에 오는 게 얼마나 끔찍한데.어머니 : 저 불쌍한 여자가 저기 혼자 있어요. 수프라도 좀 갖다 줘야겠-아버지 : 말도 안 되는 소리! 당신은 정말 마음이 여려서 탈이여. 그러면 여기로 병균을 갖고 오게 될 걸! 복도도 다 살균 처리를 해야 해요.(하얀 역병, 251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가까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 나에게 옮아오면 나 역시 타인을 위해하는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의 코로나는 우리 인간성을 적나라하게 겉으로 표현해주는 바로미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선한리뷰]결국 사랑밖에는 남는 것이 없다.모든 것이 증발되고, 조려지고, 오직사랑만 남으면 좋겠다. 내가 그 사랑이 되리. 만물을 욕망하는 것보다불가능을 욕망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
똥 한덩어리에 일생의 욕망을 투자하는 쇠똥구리, 타자의 목숨을 빨아 부와 권력을 누리는 맵시벌, 무책임한 연애로 청춘을 탕진하는 나비, 과학으로 무장한 채 종족학살을 위해 전진하는 개미들...
양차대전 사이 유럽을 살아간 휴머니스트의 치열한 고민, 그러나 위트 넘치는 기록들. 유한하고 덧없고 치졸하고 비루하며 지독히도 어리석은, 그러하기에 아름다운 드라마로 변신하는 모든 순간에 바치는 찬가다.
곤충 극장
마크로풀로스의 비밀
하얀 역병
역자해설
카렐 차페크 연보
카테고리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