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 시인의 수필집입니다. 저자 특유의 낙천적인 시각이 담겨 있어, 웃음이 나게 되는, 따스한 스프 같은 수필집이에요. 개인적으로는 황인숙 시인의 첫 시집이 가장 좋았고, 갈수록 취향이 먼 글들이 조금씩 나와서 아쉬웠는데, 그럼에도 저자만이 쓸 수 있는 시, 수필이 있어서 가끔 생각날 때면 읽게 되곤 합니다. 은근한 경쾌함, 발랄함이 느껴지는 글들이 담겨 있어 잘 읽었습니다.
만필(漫筆) 은 붓가는 대로 쓴 글이다. 제목에다 떡하니 만필 이란 단어를 집어넣고, 유쾌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세상의 심각한 일들이 이해될 리 없다는 처칠의 경구까지 적어놓은 것을 보면, 저자는 꽤나 발랄한 사람인 듯싶다(처칠은 그녀가 매력없다고 생각해온 사람이라고 한다!). 역시, 실려 있는 글에서 그늘 따위는 전혀 찾을 수 없다. 가령 다음과 같은 일화들.
유유자적. 개미들과 전쟁을 하는 방, 개미에게 물리다 지쳐 일주일에 2백 마리 이상 학살 을 하다가 그녀는 생각한다.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개미와 휴전을 하고 싶다고. 서로의 영역만 침범하지 않는다면 설사 개미 제국 이 이뤄진다고 해도 나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또한 재기만발. 미녀의 속옷이 모두 수더분하다는 자신의 경험과 보기 흉한(수더분한) 속옷은 보이지 않으려고 얼른 벗게 한다는 상반된 진술 사이에서 얻은 세상엔 60억의 사람이 있고 60억의 팬티관이 있다는 깨달음. 그리고 수첩이란 1) 사물로서의 2) 삶의 거울로서의 3) 글쓰기의 한 형식으로서의 도구라는, 자잘한 일상 속에 숨어있는 삶의 진실들. 즐거움을 아는 그녀의 글은, 읽는 우리들에게까지 흐뭇한 즐거움과 웃음을 선사한다.
1부
쓰달픈 인생
잠과 꿈
농담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성 발렌타인 데이의 문상
(...)
2부
사행성 인간
내 친구의 생일날
내 동생
1970년대 팝송
깊어가는 가을
(...)
3부
사랑도 없이, 결핍감도 없이
나이듦에 대하여
사십대
봄맞이
봄이다!
(...)
4부
나의 남산 야외식물원
으젠느 앗제의 거리
빠체에서
폐교가 지어내는 시
리무진 버스를 타고
(...)
발문 - 고종석 / 황인숙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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