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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고 싶은 창의융합 인재 6 : 정약용

깊이 있지는 않지만, 초등아이에게 정약용이란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알려주려고 구매하였다.어떻게 보면 조선이 낳은 천재이고, 조선이 한 단계 더 발전하고 강한 나라로 나갈 수 있을 뻔한 기회를 만들어준 인물이다.다만 그의 꿈을 이루어질 정조가 좀 이른 시간에 세상을 떠난것이 아쉬움이 남는다.조선말 고종에게 만일 정약용이 있었다면 그 또한 우리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었을런지 모른다.어쩌면 일본에 의한 식민지라는 최악의 결과는 피할 수 있었을 수도...

실용적 학문을 추구한 조선의 다빈치, 정약용정약용은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인 실학을 집대성하는 등 다양한 학문에 개방적인 태도를 가져 정치, 경제, 과학, 건축, 문학, 의학, 군사 등의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단순한 유학생을 뛰어넘어 수준높은 과학 기술 학자로서 활약해 정조의 능행차에 쓰일 배다리를 훌륭하게 설치하는가 하면, 서양 과학 기술을 접목해 거중기를 발명하고 이것을 활용해 공격과 방어의 기능이 추가된 새로운 개념의 수원 화성을 건설했습니다. 220년 전 축조된 수원 화성은 건설의 전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된 화성성역의궤 로 그 완성도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정약용은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하면서 관리들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힌 목민심서 를 써서 백성을 사랑하고 존중하도록 힘썼습니다. 이런 사명감을 바탕으로 청렴함과 강직함으로 암행어사와 지방 관리 등 나랏일을 수행했습니다. 서학과 천주학을 했다는 이유로 18년의 유배를 간 시절에도 끊임없는 저술 활동을 통해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정치 개혁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이때 행정 기구의 개편을 비롯한 관제·토지제도·부세제도 등 모든 제도의 개혁 원리를 제시한 경세유표 , 형법을 다룬 흠흠신서 등은 목민심서 와 함께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고전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렇듯 정약용은 백성을 이롭게 하고 세상을 바로 잡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이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한 창의융합 인재였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개인의 소질과 능력이 공익을 위해 쓰여질 때 얼마나 의미 있게 발휘되고 역사에 길이길이 남아 칭송될 수 있는가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사?세계사와 함께 보는 정약용의 일생
정약용이 들려주는 창의융합 인재상

* 독특한 책 읽기 방법으로 키운 사고력
-세 개의 눈썹을 가진 시 쓰는 아이
당연한 것도 궁금해
정치적 혼란 속에서 태어난 귀농
나귀 등에 책을 싣고 다니는 천재 소년

* 실용적 학문을 추구한 개방적 태도
-나라를 구할 새로운 학문과 만나다
새로운 것이 가득한 한양 생활의 시작
새로운 학문, 실학
정조와의 첫 만남
천주교와 만나

* 다양한 지식을 융합한 과학적 상상력
-선비, 발명가가 되다
철저한 현장 조사 후 배다리를 설계하다
과학 기술의 결정체, 수원 화성
2년 8개월 만에 완성된 수원 화성

* 백성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애민 정신
-백성을 보살필 때는 부모의 마음으로
청렴한 사또
백성을 사랑으로 살피고 기르는 관리
천연두를 없애기 위해 쓴 의서 : 마과회통
떠난 후에도 사랑으로 남은 수령

* 옳고 그름을 알고 실천하는 강직함
-온갖 시련에도 올바름을 버리지 않다
문과 무를 겸비한 선비
강직한 암행어사
진산 사건
두 번의 유배길

*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킨 체계적 철학
-미래를 준비했던 유배 시간
정약용을 스승으로 섬긴 혜장 스님
유배지에서 수많은 책들을 쓰다
편지로 띄운 아버지의 가족 사랑
죽는 날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선비

정약용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