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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세상을 호령하다


친정아버지는 한시를 무척 좋아하셨다. 초서를 즐겨쓰시던 아버지는 아무리 술을 많이 드시고 들어오셔도 새벽이면 일어나셔서 서예를 하셨다. 집엔 늘 화선지와 먹, 쓰다버려진 연습 종이들이 가득했고, 어려운 한자들로 이루어진 책들이 쌓여있었다.“향아, 와서 먹 갈아라.”하지만 내게는 제일 듣기 싫은 소리였다. 어린 마음에 붓글씨를 쓰시는 아버지 옆에서 먹을 가는 일은 참으로 지루했다. 당연히 글씨를 쓰신 후 그 내용을 설명해주시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기 만무했다.하지만 지금은 참으로 그립다.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들려주던 그 많은 한시와 이야기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아쉽다. 아버진 말씀을 참으로 맛깔스럽게 하셨다. 한시를 들려주시며 그 내용을 설명해주실 때면 내 눈앞에 한 폭의 그림이 절로 그려질 만큼 아름다웠다. 한시의 댓구의 묘미와 함축된 단어 속의 풍경은 아버지의 입을 통해 완성되는 것같다고 느낄 정도로...소중함을 알지못했던 일들이 다시는 내 인생에서 일어나지 못할 소중함이었음은 돌아가신 후에야 깨달았다. 도연명시집, 당시선 등을 사다가 혼자 읽어보았지만 어떤 유명한 교수의 해석도 아버지가 들려주던 청아함이 없었다. 내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그래도 늘 미련이 남아 이 책, 저 책 고전과 한시를 알려주는 책들을 뒤져보곤 한다. 한자를 잘 모르니까 해석이 잘 안되고 해석이 잘 안되니까 마음에 와닿지않고 남의 해석은 그다지 탐탁치않은 어려움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이 책은 어렵지않았다. 원문을 읽지않고 해석되어진 문장을 읽어도 한 문장 문장마다의 묘미가 흘러나왔다. 문장들에 대한 저자의 설명도 간결하면서도 뚜렷했다.‘글로 세상을 호령하다’는 이익, 이이, 유득공, 서유구 등 글과 음악, 풍류로 시대를 풍미한 학자, 관료, 문인들이 어떻게 마음을 닦고, 학문을 세우고, 세상을 유람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책읽기 방법과 글쓰기 요령, 바른 스승을 구하고 벗을 사귀는 자세, 선비의 공부법...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시간이 생길 때마다 한 편씩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많은 책을 읽지만 책을 읽는데 기본시간이 필요하다. 이어서 읽지않으면 그 내용이 끊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부담감없이 아무데나 펴서 그 부분을 읽으면 된다. 마음이 팍팍하다고 느껴지거나 신선한 산소의 공급이 필요하다 생각될 때, 가볍게 웃음짓는 연습이 필요할 때, 뇌에 상큼한 충격을 주고 싶을 때, 무료하지만 생각은 하기싫을 때 이 책을 펼쳐들면 된다.양반다리가 안되는 것에서도 삶의 원리를 찾아가는 홍낙명의 글, 등산을 통해 학문을 깨닫는 이이의 글, 도성안에 앉아 물을 감상하는 기술로써의 와유를 이야기하는 서영보의 글... 저자의 표현대로 옛날의 사진첩을 꺼내든 듯 아련하면서도 나의 살아가는 자세를 돌아보게하는 매력이 있다.글로 세상을 호령할 만큼의 글재주를 지니지못한 나로써는 선인들의 글재주보다는 세상만물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각과 섬세함이 부럽다. 이름없는 꽃 한 송이도, 친구들과 나누는 짧은 수다도, 새의 날개짓 하나도 소중한 삶의 일부분이 되는 그들의 감각이 부럽다. 삶과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이 부럽다. 삶 속의 주인으로써의 오만함과 경건함까지 부럽다. 다른 사람의 세상이 아니라 자신의 세상을 호령하는 그들의 용기가 참으로 부럽다.글은 스스로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스리는 과정이다. 참으로 그러하다.
한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탁월한 분석, 대중적인 글쓰기를 통해 조선 선비들의 감성과 사유 세계, 삶의 지향점을 우리 시대의 보편적 언어로 보여 왔던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이종묵 교수가 글과 음악, 풍류로 한 시대를 풍미하고 글로 세상을 호령한 선비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글로 세상의 주인이 된 조선 최고 문장가들의 마음 닦기, 책읽기 방법과 글쓰기 요령, 바른 스승을 구하고 평생의 친구를 사귀는 자세, 선비의 공부법 등 시대를 초월해 가슴을 울리는 쟁쟁하고 위대한 가르침을 배운다.

저자는 지혜롭게 살아간 사람들의 글을 읽는 이유를 옛글을 읽노라면 도심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도 아름다운 옛풍광을 즐길 수 있다. 남들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다른 세상을 옛글을 읽음으로 차지할 수 있으니, 옛글이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세상을 호령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바로 옛글이 지닌 힘이다 라고 말한다.

풍경에 취하고 책에 미치고, 일상에서 만나는 사소한 사건이나 물건에서도 깨달음을 얻고, 내가 사랑하는 삶을 살고 나를 위한세상을 호령했던 선비들의 주옥같은 명문장들은 그 시대만의 것이 아니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하고 있다.


머리말 - 내가 좋아하는 세상을 글로 호령하다
1부 글로 세상을 호령하다
맹인은 꿈을 꾸지 않는다-이익
집 안으로 끌어들인 지식의 바다-이종휘
진짜와 가짜를 가릴 필요가 있나-조귀명
도성 안에 앉아 물을 감상하는 기술-서영보
인생의 즐거움이란 무엇인가-유언호
고상하고 속되지 않은 사치-정동유
구기자와 국화를 가꾸는 집-어유봉

2부 그 많던 복사꽃은 어디로 갔나
천년 벗과의 즐거운 만남-김조순
우리나라 제품이 조악한 이유-김세희
그 많던 복사꽃은 어디로 갔나-서형수
조물주도 서늘하게 만든 인왕산의 계곡물-박윤묵
병에 걸리고 싶지 않다면 다리를 건너시오-김이안
도성 안 사람들이 하천에 노니는 물고기 같네-유득공
송홍동엔 물이 없는데 청개구리가 산다-홍직필

3부 풍광이 아름다우니 죽음도 두렵지 않다
나에게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따로 없다-이경석
자연도 글이 있어 빛난다-서유구
오래가도 바뀌지 않을 것-한백겸
나는 즐거워 피로하지 않다-김매순
집 이름에 깃들이 뜻-홍석주
풍광이 아름다우니 죽음도 두렵지 않다-김종수

4부 바른 스승을 구하는 법
돌아가신 어머니의 필적-권진응
아버지의 정이 깃든 질화로-박준원
생일을 맞은 뜻-위백규
죽은 벗의 뜻을 따라 지은 토실-유도원
대궐에서 물러난 궁녀의 발원-김도수
임금이 내리신 만병통치약-조수삼
버드나무를 심은 다섯 가지 이로움-홍양호
바른 스승을 구하는 법-성해응

5부 옛사람의 즐거운 지혜
내가 동서남북으로 창을 낸 이유-박윤원
지렁이 탕을 먹지 않는 뜻-채제공
마음을 미치게 하는 다섯 가지 물건-남유용
다섯 수레의 책을 가슴에 담는 방법-장호
소가 귀한가 나귀가 귀한가-권상신
세상의 공평한 도리는 백발뿐-이하곤
양반다리를 하는 까닭-홍낙명
이름 없는 꽃-신경준
막걸리로 집 이름을 삼을 까닭-이세화

6부 조선 선비의 공부법
홀로 하는 옛사람의 공부방식-안석경
공부로 생긴 병-최충성
천년을 거스르는 교제-김윤식
등산과 학문은 무엇이 같은가-이이
내 병을 배웠으면 처방도 배우게-김종후
슬픔을 없애려다 생긴 병-정종한
제 몸에 맞는 약-이복휴
꿈속의 공부-임상덕
좋은 사람 좋은 책 좋은 산수-윤기

7부 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나무를 심어서 이름을 남기고자 한 뜻-변종운
선비 노릇이 무슨 소용-홍성민
가난한 날 거친 밥을 먹는 요령-서유구
고대광실보다 게딱지집-임숙영
꿈속에서 배가 부른 일-박홍미
부귀함도 한가함도 절로 이르는 것-윤순
제 자신을 사랑하는 집-심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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